골프는 영국에서 시작한 귀족들만의 스포츠였습니다. 흑인이 골프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오늘날 세계 최고의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나오기까지 골프계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최근까지 존재했다고 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1. 들어가는 글
지난 21년 11월 29일 미국의 흑인 골퍼 '리 엘더'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마스터스 대회에 출전한 최초의 흑인 골퍼였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흑인 골퍼들이 겪었던 수난의 시대와 오늘날 타이거 우즈가 있기까지 골프계에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귀족, 백인 중심 문화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할까 합니다.
여러분은 믿기지 않겠지만 타이거 우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많은 흑인 골프 선수들이 겪은 인종차별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2. 흑인 골프의 역사와 인종차별
1900년대 초기 흑인의 라운드를 허용하는 골프장은 거의 없었습니다.
1921년 뉴저지에 최초의 흑인소유 골프장인 Shady Rest Golf & Country Club이 생기면서 부유한 흑인들 끼리 자유롭게 라운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고 기량이 높아진 흑인 골퍼들은 상금이 많은 PGA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백인만 참가할 수 있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있어서 참가가 불가능했습니다.
PGA는 설립 초기부터 Caucasian Only 규정을 넘어서 흑인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1925년에 흑인들이 UGA(United Golf Association)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PGA와 비슷한 프로대회를 개최했지만, 후원사가 부족했고 대회 상금이 PGA 대회의 1/10밖에 안 됐을뿐만 아니라 대회 골프장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1948년 정식으로 예선을 통과한 흑인 골퍼들이 PGA 대회 참가를 거부당한 뒤 소송을 제기했는데 PGA가 인종차별을 철폐한다는 약속을 하자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그러나 PGA는 그 약속을 파기하고 대회 명칭을 Open에서 Invitation으로 바꾸는 편법을 동원했으며, 흑인 골퍼를 초대하지 않는 방법으로 백인들 만의 대회를 지켜갔습니다.
PGA의 인종차별 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갔고 1961년에 드디어 PGA의 멤버는 백인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삭제됩니다. 흑인 골퍼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캘리포니아의 유력 정치인 스탠리 머스크가 주지사를 설득해 캘리포니아의 어떤 퍼블릭 코스에서도 PGA 대회를 열 수 없다는 결정을 했고 다른 주지사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결국 PGA가 백인 유일 규정을 삭제한 것입니다. 그 이후 흑인 골퍼 단체인 UGA도 자연스럽게 해체되었습니다.
PGA 최초의 흑인 멤버는 찰리 시포드(Charlie Sifford) 였습니다. 그는 UGA의 챔피언십 대회인 National Negro Open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한 흑인 최고의 골퍼였는데, 1967년에 PGA 대회 첫 우승을 하고 1969년 LA 오픈에서도 우승했지만 마스터스 대회에는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마스터는 PGA와 관계가 없는 대회이고 시합장소도 언제나 같은 회원제 골프장이므로 시포드가 우승할 때마다 초청자격을 변경해 가면서 흑인의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마스터스 대회의 최고 권력자였던 클리포드 로버츠 회장은 "내가 살아있는 한 골퍼는 백인이고, 캐디는 흑인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흑인을 차별했었습니다.
그러나 시포드의 초청이 거부될 때마다 마스터스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마스터스는 인종차별 폐지의 여론 때문에 고심하다가 결국 클리포드 로버츠 회장이 사망하기 2년 전인 1975년에 흑인 골퍼 리 엘더에게 최초로 마스터스 초대장을 보내게 됩니다.
마스터스의 대통령이라고 불렸던 클리포드 로버츠도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강한 여론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장을 받았다고 인종차별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골프 역사에서 흑인의 위상이 가장 높아진 건 1997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해 마스터스에 출전한 스물한 살의 타이거 우즈가 흑인 최초 메이저 대회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인데 2위를 12타 차이로 누르는 전무후무한 압도적인 기량으로 모든 백인 골퍼들을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인종차별이 종식됐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3. 맺음말
타이거 우즈는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시포드와 엘더의 이름을 거론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마지막 홀의 페어웨어를 올라오면서도 그들이 생각났다고 말했습니다.
또 나의 우승은 그들의 우승이라고 말하며 모든 흑인들의 자존심을 높여주었고 골프 역사에서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타이거 우즈도 어린 시절에 연습 시 흑인에 대한 차별을 직접 경험했기에 마스터스의 우승이 흑인 골프 역사에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들 이름이 차리인데 그 이름은 찰리 시포드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많은 위대한 골퍼들 중에서 시포드를 가장 존경했다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까지 그렇게 지었다고 하니 최근까지 골프계에서 흑인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골프계의 인종차별은 타이거 우즈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뉠 수 있지만 그 후에도 한국이나 한국계 미국인 등이 우승을 하면 이 역시 영어를 못한다, 키가 작다는 등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성 언론 보도가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젠 골프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종차별의 역사가 100여 년 간의 투쟁을 통해 이루어낸 결과라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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